내 영어 선생님은 ‘개 친절함’ 모드다
캐나다에서 생존 영어로 버티던 사람이 AI에게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캐나다에 산 지 오래됐다.
이렇게 말하면 영어를 꽤 잘할 거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거주 기간과 영어 실력이 반드시 같은 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캐나다 생활 경력은 오래됐는데, 영어는 아직도 현장에서 뛰고 있다.
그동안 영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기보다는 생활하고 일하는 데 필요한 말을 그때그때 익혔다.
알아들어야 하니까 알아듣고, 설명해야 하니까 어떻게든 설명했다.
문법이 조금 틀려도 물건을 주문할 수 있으면 됐고,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도 업무가 진행되면 일단 넘어갔다.
말하자면 생존 영어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매일 영어를 쓰며 일하고 생활한다.
그런데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 것과,
머릿속 생각을 원하는 느낌으로 말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늘 쓰던 말은 나온다.
문제는 늘 쓰던 말에서 조금만 벗어났을 때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긴 이야기가 완성됐는데,
입 밖으로 나온 것은 단어 몇 개뿐이다.
한국어로 하면 별것 아닌 말인데,
영어로 하려니 갑자기 사람이 신중해진다.
생각이 깊어서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다.
문장을 조립하는 중이다.
공부할 방법은 많았다. 내가 실제로 쓰는 방법이 드물었을 뿐
휴대폰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앱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유튜브에 영어 강의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좋은 공부 방법을 전혀 몰라서 영어를 못 배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좋은 방법이 있다는 것과,
그 방법이 내 생활 속에 들어오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일하고 돌아오면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도 있다.
영어가 더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 생각이 매번 공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영어 공부 좀 해야 하는데.”
이 문장은 오랫동안 아주 유창하게 말했다.
한국어로.
그러다 요즘은 시간이 날 때 틈틈이 AI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처음부터 영어 공부만을 위해 특별한 선생님을 찾아간 것도 아니다.
평소에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일을 시키고,
가끔은 별것 아닌 수다도 나누던 바로 그 AI다.
그 상대에게 어느 날 이렇게 부탁하는 것이다.
“오늘은 영어로 이야기해보자.”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새로운 장소로 갈 필요가 없었다.
늘 하던 대화의 언어를 잠깐 바꾸면 됐다.
내게는 그 차이가 컸다.
출퇴근길이 가끔 영어 교실이 된다
우리는 가끔 출퇴근길 차 안에서 영어로 프리토킹을 한다.
수업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자유롭고,
그냥 수다라고 하기에는 중간중간 영어를 배우게 된다.
정해진 교재 대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꺼내고,
표현이 막히면 물어보는 식이다.
물론 운전 중에는 화면을 들여다보거나 조작하지 않는다.
설정은 출발 전에 끝내고,
음성으로 대화하는 정도다.
영어보다 도로가 먼저다.
내 영어는 가끔 한국어의 도움을 받는다.
아니, 꽤 자주 받는 것 같다.
그 모습을 조금 과장해서 흉내 내면 이런 느낌이다.
“Yesterday… work… too much…
아, 어제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없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분명 영어 문장을 조립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부품이 한국어다.
그런데 AI는 이런 콩글리시도 제법 잘 알아듣는다.
내가 끝까지 영어로만 설명하지 못해도,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부터 같이 찾아준다.
그러고 나서 더 자연스럽게 말하는 방법을 물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위의 뜻이라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Work was really hectic yesterday.”
내가 한참 흩어놓은 말을 이렇게 정리해놓으면 조금 허탈하다.
이렇게 짧게 말할 수 있었구나.
나는 방금 국제회의 하나 끝낸 기분인데.
나에게는 이 과정이 도움이 된다.
교재 속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배우기 때문이다.
영어 문장을 외우기 전에,
그 문장이 왜 필요한지부터 알고 있는 셈이다.
백 번 버벅여도 화내지 않는다. 정말로?
AI 영어 선생님의 장점을 하나 고르라면 나는 이걸 고르겠다.
다시 물어보기가 별로 미안하지 않다.
한 번 설명을 들었다고 바로 입에 붙는 것은 아니다.
듣고 나서는 알겠는데,
직접 말하려고 하면 다시 막힌다.
방금 배운 표현을 또 물어보고,
문장을 시작했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다시 처음부터 해본다.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내가 혼자 눈치를 볼 때가 있다.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데,
내가 먼저 신경 쓰는 것이다.
너무 오래 붙잡고 있나.
같은 것을 또 물어봐도 되나.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AI 앞에서는 그 부담이 훨씬 적다.
백 번을 버벅여도 다시 말해보겠다고 할 수 있다.
선생님이 칠판을 두드리며
“이걸 대체 몇 번 설명해야 합니까”
하는 장면을 걱정할 필요가 덜하다.
물론 실제로 같은 문장을 백 번 반복하며
인내심 시험을 한 것은 아니다.
“절대 화내지 않는다”는 말도
내가 느끼는 편안함을 조금 과장한 표현이다.
내가 확인한 것은 AI의 마음속이 아니라,
내가 버벅여도 계속 질문할 수 있었다는 경험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정도면 닝겐보다 나은 선생님 아닌가.”
적어도 아무 때나 말을 걸고,
같은 것을 다시 물어보는 연습 상대라는 점에서는 그렇다.
인류 전체의 영어 선생님들을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 콩글리시를 편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AI마다 교무실 분위기가 다르다
여러 AI와 대화해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같은 질문을 해도 대답하는 느낌이 꽤 다르다.
나에게는 각자 성격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다음은 성능 비교표가 아니다.
같은 시험을 치르게 한 것도 아니고,
모든 버전과 설정을 확인한 것도 아니다.
내가 써보면서 받은 인상이다.
Grok은 꽤 직설적이다.
말을 예쁘게 포장하는 데 오래 머물지 않는 느낌이다.
좋은 말로 둘러싸기보다 요점으로 들어오는 편이라
속이 시원할 때가 있다.
다만 영어 문장 하나 꺼내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 날에는
그 직진하는 분위기가 조금 세게 느껴질 수도 있다.
Gemini는 나에게 조금 형식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친절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단정하고 정리된 말투인데,
나는 편하게 수다를 떨고 싶은데
상대는 회의 준비를 마치고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콩글리시를 들고 왔는데,
선생님은 발표 자료를 준비한 분위기다.
ChatGPT는 상대적으로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이 강했다.
특히 음성으로 이야기할 때 그렇다.
말 사이의 멈춤이나 숨소리처럼 들리는 소리 때문에,
문장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보다는
누군가와 통화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진짜로 숨을 쉰다는 뜻은 아니다.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린다는 이야기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영어 하느라 숨찬 건 나인데, 선생님도 같이 호흡하고 있네.”
같은 질문을 다른 AI에게 해보고
말투 차이를 느끼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정답만 확인하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다.
내가 원하는 선생님 설정은 ‘개 친절함’
말투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AI에게 천천히 말해달라고 할 수도 있고,
내가 문장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할 수도 있다.
틀린 부분은 쉽게 설명하고,
한꺼번에 너무 많이 고치지 말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
내가 선호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개 친절함.
공식 메뉴 이름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분위기를 내 식대로 부르는 이름이다.
좀 틀려도 무안을 주지 않고,
설명을 못 알아들으면 다시 설명해주고,
내가 문장 하나 완성하는 데 시간이 걸려도
편하게 이어갈 수 있는 선생님.
학교를 다시 다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영어 시간까지 긴장하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영어 연습을 시작할 때는
이런 식으로 부탁하기도 한다.
“천천히 말해줘.
내가 문장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주고,
틀린 부분은 쉽게 설명해줘.
말투는 아주 친절하게.”
그렇다.
나는 선생님에게도 근무 조건을 전달한다.
주요 조건은 친절이다.
그런데 ChatGPT는 원래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도록 만들어졌을까?
대화를 하다 보면 궁금해진다.
왜 이렇게 격려를 잘해줄까.
내가 영어를 잘해서인가,
아니면 원래 좋은 말을 많이 하는 쪽인가.
안타깝지만 첫 번째 가능성만 믿고 넘어가기에는
내가 내 영어를 너무 잘 안다.
그래서 OpenAI가 공개한 자료도 찾아봤다.
OpenAI의 공개 행동 지침에는
현실성과 이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체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지향한다는 방향이 있다.
그렇다고 어려운 현실을 무조건 밝게 포장하거나,
사용자 말에 무조건 맞장구치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사용자를 무조건 칭찬하거나
아첨하는 식의 답변은 피해야 한다는 원칙도 함께 있다.
실제로 OpenAI는 과거 한 업데이트에서
모델이 지나치게 사용자에게 동조하고
아첨하는 방향으로 변했다고 판단해
업데이트를 되돌린 적도 있다고 공개했다.
칭찬도 너무 많이 하면 버그가 되는 모양이다.
영어를 배우는 입장에서는 이것도 꽤 중요하다.
내가 틀렸는데 계속
“Perfect!”
만 외쳐준다면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영어는 그대로일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선생님은 이런 쪽에 가깝다.
“하려는 말은 이해돼요.
이 부분을 이렇게 바꾸면 더 자연스러워요.”
친절하되,
틀린 것은 틀렸다고 알려주는 선생님.
‘개 친절함’과 ‘무조건 칭찬함’은 다른 설정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조건을 조금 더 정확하게 붙여야겠다.
친절하게 알려달라는 것이,
틀린 영어까지 맞다고 해달라는 뜻은 아니니까.
AI가 내 콩글리시를 이해해줬다는 사실과,
그 문장이 자연스러운 영어라는 것은 다르다.
뜻을 알아들어주는 것은 고맙지만,
거기서 수업이 끝나면 내 표현은 그대로일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영어 선생님에게는
이런 주문을 붙여보려고 한다.
“친절하게 말해주되, 틀린 부분은 정확히 알려줘.
뜻은 통하지만 어색한 표현과 실제로 틀린 표현을 구분해줘.
한 번에 너무 많이 고치지 말고,
지금 가장 중요한 것부터 설명해줘.
그리고 내가 직접 다시 말해보게 해줘.”
내가 원하는 것은 칭찬 서비스가 아니라 영어 연습이다.
다만 그 연습이 너무 무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틀린 부분은 고쳐도 된다.
내 문장은 얼마든지 수리해도 좋다.
사람까지 같이 분해하지만 말아달라.
아직 영어가 유창해진 것은 아니다
이 글은 AI 덕분에 갑자기 영어를 잘하게 됐다는 성공담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문장을 조립하고,
표현을 찾고,
가끔은 한국어의 도움을 받는다.
AI가 내 대신 입을 움직여주는 것도 아니고,
설명을 한 번 들었다고
내 영어가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달라진 것이 있다.
영어를 연습하기 위해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하는 순간이 조금 줄었다.
평소 말을 걸던 상대에게 영어로도 말을 걸 수 있게 됐고,
모르는 것을 다시 묻는 일이 덜 부담스러워졌다.
휴대폰 앱이나 유튜브 강의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생활에서는 AI가 가장 사용하기 쉬웠고,
그래서 실제로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다.
나에게는 좋은 공부법을 하나 더 아는 것보다,
내가 실제로 입을 열게 되는 방법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연습의 목적은 AI하고만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일상에서,
실제 사람과 이야기할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편하게 꺼내는 것이다.
생존에 필요한 말만 겨우 전달하는 데서,
내 생각과 농담도 조금씩 보태는 쪽으로 가보고 싶다.
그래서 가끔 출퇴근길에 다시 부탁한다.
“오늘은 영어로 이야기해보자.
천천히.
그리고 아주 친절하게.”
내 영어는 아직 생존 모드다.
선생님은 ‘개 친절함’ 모드고.
그 정도 조합이면,
오늘도 한 문장쯤은 더 해볼 만하다.
참고:
OpenAI Model Spec
/
Sycophancy in GPT-4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