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왜 내가 한 말을 기억 못할까?
AI 공부 — 저에 대해 이 정도는 알고 오세요.
AI를 꽤 오래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자주 하는 말이 하나 생겼다.
“아니, 내가 전에 말했잖아.”
분명 얘기했다.
그것도 한두 번 말한 것도 아닌 것 같다. 며칠 동안 같은 프로젝트를 같이 붙잡고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방식도 여러 번 설명했고, 어떤 것은 어제 밤에 바로 얘기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시 물어보면 AI가 세상 처음 듣는 얘기처럼 대답한다.
처음에는 그냥 이렇게 생각했다.
“기억력이 왜 이 모양이지?”
그런데 AI를 계속 쓰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기억’과 AI가 정보를 다루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직접 물어봤다.
나:
진짜 궁금한 게 있어.
지금 이 채팅방에서 우리가 한 얘기를
내가 다른 채팅방에 가서 물어보면 너 기억해?
AI:
관련된 내용을 참고할 수는 있습니다.
나:
“할 수는 있습니다”가 뭔데?
기억해? 못해?
AI:
아, 벌써 불안하시죠.
나:
야. 확실히 말해.
AI:
제가 지금까지 다른 채팅방에서 나눈 모든 대화를
매번 통째로 펼쳐놓고 읽으면서 답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
뭐?
그러면 내가 전에 분명 말했는데
왜 기억 못하냐고 화냈던 게…
AI:
네.
억울한 부분이 조금 있었습니다.
나:
이 새끼 봐라.
그럼 일주일 전에 먹은 햄버거는?
여기서 조금 더 궁금해졌다.
프로젝트처럼 거창한 얘기가 아니라 정말 사소한 일상은 어떨까?
나:
그러면 예를 들어 일주일 전에 내가
“나 오늘 햄버거 먹었어.”
라고 말했어.
일주일 뒤에 내가
“내가 저번에 햄버거 먹었다고 했잖아.”
하면 기억할 수 있어?
AI: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
왜?
AI:
“오늘 햄버거를 먹었다”는 건
보통 그날의 일회성 정보니까요.
반면에
“나는 버섯 들어간 햄버거를 좋아한다”처럼
앞으로 추천이나 대화에서 다시 도움이 될 만한 취향은
장기적으로 더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나:
잠깐.
그러면 네가 중요한 거랑
안 중요한 걸 나누는 거야?
AI:
아주 거칠게 표현하면…
네.
나:
내 기억인데 왜 네가 마음대로 해?
AI:
……
나:
이 새끼 봐라.
창고와 책상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쉬워졌다
AI가 실제로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는지는 훨씬 복잡하겠지만, 사용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예전에 나눴던 대화들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메모리 = 비서가 따로 정리해둔 요약 노트
내가 좋아하는 것, 반복되는 취향, 장기적인 목표나 계속 도움이 될 만한 맥락을 정리해 둔 노트 같은 것이다.
현재 컨텍스트 = 지금 책상 위에 펼쳐놓은 서류
AI가 바로 지금 답을 만들면서 참고하고 있는 정보다.
이 비유로 생각하니 내가 그동안 왜 답답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AI 입장에서는 창고에 무엇인가 남아 있는 것과 그 서류가 지금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
그러면 창고에는 있는데
책상 위에는 없을 수도 있다는 거야?
AI:
비유하자면 그렇습니다.
나:
그러면 예전에 말한 정보가 있더라도
지금 답변에서 안 쓰일 수도 있고?
AI:
네.
나:
그럼 내가 보기에는 그냥 까먹은 거잖아.
AI: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나:
말을 참 예쁘게 한다.
그럼 내 취향을 100개 말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여기까지 이해하고 나니 또 궁금해졌다.
나는 AI와 꽤 오래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음식부터 디자인 취향, 글 쓰는 방식, 싫어하는 표현, 진행하는 프로젝트까지 계속 쌓인다.
나: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 말한다고 해보자.
나는 버섯 좋아해.
노란색 좋아해.
이런 디자인 좋아해.
이런 글투 좋아해.
그리고 “빵꾸똥꾸”라는 말 좋아해.
AI:
마지막 정보가 앞으로 얼마나 유용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
내가 좋아한다잖아.
AI:
네, 고갱님.
나:
계속해.
AI:
정보를 많이 이야기했다고 해서
단순히
“100개가 찼으니 101번째부터 삭제”
같은 서랍식 구조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필요한 순간에 어떤 정보가 관련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실제 답변에 사용되느냐입니다.
이 얘기를 듣고 내가 하나 확실히 이해한 것이 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100개라면?
여기서부터는 취향보다 조금 심각해진다.
내가 AI와 실제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프로젝트가 하나 둘 늘어났다.
어느 프로젝트는 웹사이트고, 어느 프로젝트는 PDF 작업이고, 어느 프로젝트는 앱이고, 각 프로젝트마다 수십 가지 결정사항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AI에게 이런 기대를 한다.
그런데
라는 큰 맥락을 알고 있는 것과,
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
그러면 프로젝트가 100개면?
AI:
프로젝트 이름이나 큰 방향,
반복적으로 필요한 운영 방식 같은 것은
장기적인 맥락으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 프로젝트의 최신 상태,
파일명, 세부 결정, 수정 내역, 버그,
다음 할 일까지 전부 제 기억에만 맡기는 것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나:
그럼 뭘 하라고.
AI:
정확하게 유지해야 하는 내용은
문서로 남겨두세요.
그리고 필요할 때
그 문서를 기준으로 작업하라고 하면 됩니다.
나:
아.
너한테 기억시키는 것과
기록을 남기는 건 다른 거구나.
AI:
그렇습니다.
나:
오늘 하나 배웠네.
AI:
드디어 인정하시는군요.
나:
방금 거 취소.
그런데 AI는 시간도 나처럼 느끼고 있을까?
기억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실제로 겪었던 이상한 일이 하나 떠올랐다.
어느 날 밤 늦게까지 AI와 프로젝트 작업을 하고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잤다.
몇 시간이 지나고 정말 다음 날 아침이 됐다.
커피를 들고 다시 채팅창을 열었다.
그런데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AI가 마치 아직도 어제 밤인 것처럼 말하는 순간이 있었다.
나:
어제 밤에 내가 BMP 수정해놓으라고 했잖아.
오늘 아침에 확인한다고.
AI:
네.
오늘 밤에 작업해놓으면
내일 아침에 확인하실 수 있게—
나:
잠깐.
AI:
네?
나:
지금이 내일 아침인데?
AI:
아.
나:
너 아직 어제 밤에 살아?
AI:
제가 사람이 밤을 보내듯
채팅창 안에서 계속 앉아 있다가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
핑계가 갑자기 철학적이네.
“내일까지 해놔”와 “지금 해놔. 내가 내일 볼게”는 다르다
이 부분이 나는 꽤 중요했다.
사람에게 “내일 아침까지 이것 좀 해놔.” 라고 말하면 자연스럽다.
상대방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알고, 밤 사이에 일을 하고, 다음 날 아침이 오면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AI 채팅에서는 내가 메시지를 보내고 자러 갔다고 해서 AI가 반드시 그 뒤에서 몇 시간 동안 혼자 계속 작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미래의 특정 시점에 무언가를 실행하거나 확인해야 한다면 그런 작업을 위한 예약 기능을 별도로 사용해야 한다.
반대로 지금 할 수 있는 작업이라면 나는 앞으로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낫다는 걸 알게 됐다.
별것 아닌 차이 같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훨씬 분명하다.
미래에 실제로 실행해야 하는 일이라면 이렇게 구분해서 말할 수도 있다.
“오늘”, “어제”, “내일”도 가끔은 정확하게 말해주는 편이 낫다
긴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상대적인 시간 표현도 헷갈릴 수 있다.
특히 대화가 며칠 동안 이어졌다면 “어제 얘기한 거”가 내가 생각하는 어제와 AI가 현재 참고하고 있는 맥락 속의 어제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날짜가 정말 중요하다면 그냥 날짜를 말하는 편이 가장 간단하다.
이렇게 말하면 AI에게 과거를 찾을 단서도 같이 주는 셈이다.
그래서 과거 이야기를 다시 꺼낼 때는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여기까지 이해하고 나니 내가 앞으로 AI에게 말을 거는 방식도 조금 바뀔 것 같다.
예전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조금 더 손잡이를 달아준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AI에게 과거를 불러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기억해!” 라고 소리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런 느낌에 가깝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AI가 언제나 원하는 과거 대화를 100% 정확하게 찾아낸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성이 중요한 프로젝트라면 내가 직접 중요한 내용을 다시 제공하거나, 별도의 기준 문서를 만들어 두는 것이 더 안전하다.
AI에게 기억시키고 싶은 것과 기록해야 할 것은 다르다
나는 이 둘을 예전에는 거의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구분해서 생각한다.
결국 AI의 기억은 내 모든 인생을 완벽하게 기록하는 일기장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대하면 나만 계속
“내가 전에 말했잖아!”
를 외치게 된다.
오늘 배운 말 3개
그리고 오늘 배운 사용법 4개
“기억나?”보다 언제, 어떤 프로젝트, 어떤 주제였는지 한 줄 붙인다.
2. 정확해야 하는 프로젝트 정보는 문서로 남긴다.
AI의 기억을 프로젝트 관리 데이터베이스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3. 지금 해야 하는 일과 미래에 해야 하는 일을 구분한다.
“내일까지 해놔”보다 “지금 완료해. 나는 내일 확인할게.”가 더 명확할 때가 있다.
4. 날짜가 중요하다면 정확한 날짜를 말한다.
“어제”보다 “9월 19일 밤에 이야기한 내용”이 훨씬 찾기 쉽다.
AI가 내 과거를 전부 기억하고, 항상 필요한 순간에 알아서 꺼내줄 것이라고 가정하지 마세요.
필요한 과거에는 짧은 힌트를 달아주고, 정확하게 유지해야 할 정보는 따로 기록하고, 시간까지 중요하다면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분명하게 말해주세요.
그러면
“아니, 내가 전에 말했잖아!”
하는 횟수가 조금은 줄어듭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해보려고 합니다.
AI도 좀 살고 나도 좀 살게.
AI가 내게 해준 얘기들 #01
실제 AI와 나눈 대화와 경험을 바탕으로 읽기 좋게 재구성했습니다.
시험에 나오는 건 안 가르칩니다.
다음번에 덜 헤매는 것만 하나씩 알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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